마태복음 25장 32-46 (인간의 존엄-2)

어제에 이어 계속합니다.

1929년에 세계 공황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공황으로 유럽과 미국의 경제적 차이가 벌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공황으로 유럽은 독재정권, 파시스트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이나 특정집단에 정치적 권력을 주어 위기를 극복하자는 태도입니다. 독일은 Hitler을, Italy는 Mussolini를 선택합니다.  유럽은 강한 정부를 만들려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합니다.

이러한 선택의 결과는 사회적 정치적 약자에 대한 박해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2 차 세계 대전에서 유대인과 집시의 학살과 추방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과 반대의 길을 서택합니다. Roosevelt을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그는 뉴욕 주지사 때부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사용합니다. 노인과 농민과 가난한 계층을 위한 사회 보장을 실시합니다. New Deal 정책을 선언합니다. 뉴딜은 가난한 계층에 대한 배려로 시작했지만 엄청난 효과를 발휘합니다. 2차 셰계 대전을 치루는 원동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의 결탁으로 막혀 있던 노조 설립을 허락합니다. 그의 정책은 약자중심입니다.

특히 그의 아내 일리노오는 당시에 흑인을 차별하는 법이 있었지만, 그녀는 흑인의 인권을 위해서 백인들과 당당하게 싸웁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흑인들이 노예 해방의 주역 링컨의 영향으로 공화당원이였지만 루즈벨트 때에 민주당으로 당적을 변경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미국과 유럽의 차이입니다. 유럽은 사회적 약자인 유대인과 집시의 학살을 방조합니다. 그들은 약자를 쓰레기 취급을 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은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지배를 받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지배는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어제 제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면 그것이 그 사회의 치명적 약점이 되고 결국은 기득권층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선진국을 유지 할 것인가를 이민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달려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백인들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경제 정책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정책이 그 국가을 가장 안전하게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정신입니다.

예수님이 사회적 소자, 약자를 돌보는 것이 나를 돌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들이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 우리 사회적 안정 구조로 지키며 하나님의 축복을 현실화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존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피조물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했기에 그 누구에도 무시 당하거나 죽음을 당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얼굴의 색깔과 법적 신분으로 구별하는 것은 그 사회와 국가가 망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심판입니다.

미국의 DACA의 처리는 미국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Trump의 정치적 행보는 인종과 피부의 색깔에 따른다는 것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자신이 장로교 신자라고 합니다. 많은 백인 기독교인들이 Trump을 지지합니다.  이것이 미국의 불행의 시작입니다.  인간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배려해야합니다.  피부색갈과 물질적 소유로 약자를 배착하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이릅니다.

우리들이 타인의 존엄을 지킬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존엄을 지켜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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