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 1-16절 (우리는 누구일까요? )

우리는 누구입니까?  내가 나를 알까요?  다른 사람이 나를 알까요?  우리 자신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사건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문둥병자, 시몬의 병을 고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둥병은 Hebrew로 Charas입니다. 때리는 매나 벌 받는 징계를 의미합니다. 문둥병은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벌,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이 때리는 매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문둥이를 치유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매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되심을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첫째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을 보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익과 권위에 도전이 되기에 주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둘째는 백성들입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로마에서의 정치적 해방과 경제적 축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자신들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 할 정치적 경제적 Messiah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 할 때에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환호했습니다. 그러기에 제사장들이 주님을 죽이면 폭동이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자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칩니다.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면 메시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며 죽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제자들은 향유를 팔아 가난한자들을 구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향유를 허비했다고 비난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보다 향유의 값어치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 후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혁명을 일으키면, 영의정과 좌의정을 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시기에 제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여인입니다. 그 여인의 행동을 보시고 예수님은 나의 장례를 위함 이라고 하십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인정하십니다.

제사장, 장로, 백성, 제자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문둥병을 치유하시는 기적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자신들의 이익과 손해에 따라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름 없는 여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봅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향유가 아깝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의 이익과 손해에 따라 바라본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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