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 17-29 (양 다리 걸치기)

먹는 다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누구하고 먹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맛없는 음식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으면 맛이 없는 것도 맛이 있습니다.

식탁은 정신과 감정을 나누는 것이고 문화가 공유되는 곳입니다. 영적 교감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이 없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고통입니다. 맛있는 음식이지만, 자신을 배신하고 자신에게 죽음을 갖다 줄 사람과 식사를 한단느 것은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팔아 버릴 가롯 유다와 식사를 합니다. 예수님은 고통의 식사를 합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v.22) 제자들 몹시 근심하며 주님에게 내가 당신을 팔 사람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왜 제자들이 이렇게 반응을 합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제자들의 기대대로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로마를 물리치고 왕이 되실 것 같으면 실망했을까요? 어느 여인이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었을 때에 제자들은 그 여인에게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는 예수님에 대한 분노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됐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향유 한 병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유의 항아리에 빠뜨렸을 것입니다. 5만 불이 아니라 100만 불을 사용해도 그 여인을 칭찬했을 것입니다.

저는 제자들도 가롯 유다와 같이 주님을 배신하려고 했다고 성경을 해석합니다. 당시의 수많은 정황이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가야바의 법정에서 부인등 많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 후에 너무나 무능하셨습니다. 성전 청소 한 번 하고 그저 예루살렘과 베다니를 왔다 갔다 하십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기대하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식탁에서 예수님에게 내가 당신을 팔 사람입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제자들은 제사장이나 성전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 일에 협조 했을 지도 모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면 살길을 찾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의 표현으로 양다리 걸친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도 양다리 작전을 합니다.  한 다리는 세상에 다른 다리는 하나님에게 걸치고 있습니다.

가롯 유다는 식탁을 떠납니다. 양다리에서 완전히 예수님에게 다리를 뺍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식탁을 떠나지 않습니다. 끝까지 양다리 걸치고 있습니다.  모두가 배신자입니다.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식탁을 떠나는 자는 배신자가 됩니다. 식탁을 떠나지 않는 자는 제자가 됩니다.  완전히 다리를 주님에게 뺀 자가 배신자가 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을 배신합니다. 그러나 식탁, 주님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양다리 걸치고 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오늘도 양다리 걸치고 살아가는 이 배신자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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