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 36-46 (변화산의 영광과 겟세마네에서 고난)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기 전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십니다. 주님이 11명의 제자를 끌고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11명중에서 3명의 제자들을 다시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3명의 이름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날 때 함께 있던 자들입니다.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변화산은 예수님에게 영광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에서는 주님이 (v.38-39) 주님이 고민하고 슬퍼하십니다.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3명의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모습과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의 모습에서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요?

변화산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합니다.  겟세마네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정확하게 나타냅니다. 제자들은 엄청난 혼돈을 격고 있을 것입니다.

(v.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첫 번 기도는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거부하십니다. 죽음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죽음을 받아들이시겠다고 합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이 나타납니다.

(v.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두 번째 기도는 세 번째에도 반복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사는 것에서 죽는 것으로 선택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변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나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3 번의 기도에서 하나님의 아들에서 죽어야 할 사람으로 변화하십니다.

이것이 겟세마네와 변화산의 차이입니다.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 있는 자를 대신해서 죽으시는 변화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 날 우리에게 똑같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로 변화됩니다. 이것은 변화산의 변화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나의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 우리는 겟세마네의 예수님처럼 됩니다.

신앙은 변화산에서 겟세마네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신자들은 베드로와 같이 변화산에서 장막 셋을 짓고 그 산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영광과 승리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겟세마네을 포기합니다. 나의 십자가가 없습니다. 아픔과 고통을 거부합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같은 삶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원합니다. 강하고 높은 것을 원합니다. 세상의 승리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겟세마네로 변화하시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주님의 명령에 거부하는 것은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기도하는중에 잠자는 제자들과 같습니다.

신앙은 변화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겟세마네의 주님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나의 선택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십자가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오늘도 이러한 선택에서 하루를 고민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들이 이러한 고민을 한다면 오늘 하루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는 인사를 여러분에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앞에두고 땀이 피가 되는 고민과 싸움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과 싸움이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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