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장 21-43 (찾는것과 함께 가는 것-1)

사람들을 헤어지며 만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 관계에서 서로 찾아주며, 함께 가는 것은 더욱 더 중요합니다. 누가 나와 함께 가며 누가 나를 찾아줍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주시며, 우리와 함께 가시길 원합니다.

혈루병 걸린 여인이 나옵니다.  혈루병은 오늘 날의 하혈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배경으로 볼 때에, 성병으로 해석 할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신분은 천하고,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몸을 만지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능력있는 사람의 몸을 만지면 그 능력이 자신에게 전가 된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의 몸을 만질 수 없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옷자락으로 만족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보니, 예수님의 몸을 만질 형편이 못 됩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사람입니다.

혈루병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 자락을 만졌을 때에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이 나갔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여인을 찾으십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과 형편에 찾아오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몸을 만지는 군중들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얻지 못합니다.  그저 군중심리에 휩쓸리어 신앙 생활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게 해야합니다.  우리의 깊은 죄를 보고 슬퍼하며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됨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고백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서 나의 죄를 통찰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렇게 원망합니다.  Why me?  왜 나를 이렇게 고통을 주십니까?  너무나 억울하고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인생 자체가 더욱 더 불행해집니다.

혈루병 걸린 여인이 창녀이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깊은 죄악으로 슬퍼합니다.  우리도 혈루병 걸린 여인과 같이 내가 당하는 일의 나의 죄악의 결과이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고 해야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 없어도 됩니다.  비천한 인간이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깊은 기도는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때로는 이미 주어진 응답이고 우리가 원하는 응답을 포기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대강절입니다.  나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려면 둘중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군중이 되든지?  혈루병 걸린 여인이 되든 지 둘중의 하나입니다.

누구로 살아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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