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장 21-43절 (찾는 곳과 함께 가는 것-2)

회당장 야이로가 자신의 딸을 살려 달라고 합니다.

(v.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와 함께 가십니다.  우리는 본문을 다양하게 해석 할 수 있습니다.

회당장은 율법의 집행을 관리하고 회당의 예배를 관장합니다.  모든 회당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짓습니다.  율법과 제사를 대신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루살렘의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 이러한 회당장의 태도를 알면 회당장을 어떻게 처리 할까요?  예수님과 같은 등급으로 처리 할 것입니다.  회당장은 자신에게 찾아올 불이익과 어려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자신의 딸을 살리고져 하는 마음이 너무나 강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문맥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은 회당장의 딸을 소녀로 부르십니다.  소녀는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다음 장인 마가 6장에 헤롯이 요한을 죽입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춥니다.  6장 22절에 헤롯이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에게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합니다.  이때에 성경은 헤롯이 살로메를 “그 여아에게” 라고 합니다.

헤로디아와 살로메의 관계는 친딸과 친 아버지가 아닙니다.  다른 아버지의 딸입니다.  수양 딸이 됩니다.  이것이 소녀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회당장의 딸을 친 딸로 해석 할 수 있지만 어원적으는 수양 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딸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소녀라고 합니다.  영어번역은 Damsel 로 번역을 했습니다.  포괄적으로 입양한 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회당장은 자신의 위치와 권위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제가 좀더 의미적으로 해석하면 회당장은 자신의 수양 딸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딸을 재산입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여자 아이 노예의 값은 남자 아이 노예의 값이 반입니다.  회당장은 노예를 딸로 입양 했을 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회당장의 딸이 수양 딸이라면 우리는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가를 알게 됩니다.

노예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버릴 수 있는 인간관계이지만 그것을 지키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회당장에게 예수님은 함께 가십니다.

우리에게 회당장의 모습이 있다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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