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 14-29절 (더러운 춤 값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많이 봤던 그림이 있습니다.  살로메가 춤추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화가들은 그녀의 춤을 더러운 춤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참수 당한 세례 요한의 머리나 칼을 그렸습니다.

살로메가 더러운 춤을 잘 추자 분봉왕 헤롯이 무슨 요구든지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살로메의 엄마 헤로디아는 자신과 분봉왕 헤롯의 부정한 결혼을 지적하고 비난한 세례요한을 죽여 달라고 살로메에게 요구합니다.  살로메는 헤롯에게 세례 요한의 목숨을 춤 값으로 달라고 합니다.

분봉왕 헤롯이 살로메의 더러운 춤 값으로 세례요한의 목숨을 지불합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이 허망합니다.  세례 요한은 비천하고, 타락하고, 더러운 헤롯과 헤로다아의 복수로 죽습니다.

이러한 죽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더러운 것을 위하여 깨끗한 것이 죽습니다.  쓰레기를 위하여 보석을 버립니다.  우리는 이러한 죽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평생은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목숨을 무엇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까?  고귀한 것입니까?  우리는 돈을 위하여, 먹고 사는 것을 위하여 우리의 목숨 값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세례 요한입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과 다르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살로메는 돈입니다.  돈은 우리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분봉왕 헤롯은 이 시대의 세계관입니다.  우리는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먹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돈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시대의 행복과 안전을 제공하는 발판입니다.  마음의 여유를 주며 사악한 마음을 갖지 않게합니다.  돈의 긍정적 기능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시간과 육체는 이러한 돈을 위하여 집중적으로 투자합니다.

그러나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이 우리의 주인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계선을 쉽게 넘어갑니다.  우리들이 돈의 힘은 인정하지만 돈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포로가 되면 사람은 명예와 자존심, 가치와 존귀함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을 돈과 교환하게 됩니다.  그러면 돈의 힘으로 자신과 이웃을 평가합니다.

세례 요한은 분봉왕 헤롯과 헤로디아의 부정한 관계를 지적했습니다.

우리도 돈에 끝없는 저항을 해야합니다.  돈이 아닌 것으로 살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해야합니다.  돈이 아닌 것으로도 우리 자신을 명예롭게, 신실하게, 거룩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해야합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더러운 춤 값으로 지불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앙과 명예와 가치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돈과 싸운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의 목숨을 더러운 춤 값으로 지불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계선을 지키는 자를 성경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힘의 원동력은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들이 돈을 위하여 사는 것 같지만 끝없는 싸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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