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10-11절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신앙)

가롯 유다는 12명의 제자중에 유일한 유대 출신입니다.  11명의 제자들은 갈릴리 지역 출신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지역 감정이 매우 심했습니다.  유대지역은 갈릴리 지역을 천박하게 받아들였고 갈릴리는 유대지역, 예루살렘을 착취의 대상으로 봤습니다.  갈릴리 지역은 농사가 가능하고 이러한 땅의 주인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지주들이 됩니다.

다수의 제자들이 어부입니다.  어부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소작농들이 선택하는 최후의 직업입니다.  당시의 배로 물고기를 잡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일입니다.  그럼으로 성경은 바다를 죽음의 세력으로 봅니다.  그럼으로 어부들이 예루살렘, 유대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일한 유대 출신의 가롯 유다는 11명의 제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돈을 맡았습니다.  우리는 돈 세는 것을 쉽게 생각합니다.  당시에 산수를 할 수 있는 매우 적었습니다.  돈을 맡았다는 것은 그가 현명하기에, 살림과 재정을 책임졌을 것입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탁월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아마도 그는 자발적으로 예수님에게 찾아갔을 것입니다.  성경은 가롯 유다가 제자되는 과정에 침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정치적 경제적 회복을 가장 열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됐을 것입니다.

가룻을 Iscariot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단검입니다.  열심당원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서 단검을 갖고 다녔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서 예수님이 왕이되어야 한다는 열정과 열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기대가 크면 상대방에 대한 실망이 큽니다.  열정이 식으면 모든 일에 냉랭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그가 은 삼십에 탐이 나서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예수님을 팔겠다고 하자 제사장들이 은 삼십을 줍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배신감을 갖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날 우리의 신앙은 연필로 하나님에게 쓰는 편지와 같습니다.  연필로 많은 내용으로 채웁니다.  기도와 예배와 헌신과 봉사로 채웁니다.  그러나 연필로 썼습니다.  지우개는 연필로 쓴 글을 지웁니다.

환경이라는 지우개가 지우면 내용들이 지워집니다.  질병이 찾아오면 믿음이 무너지고, 가난이 찾아오면 하나님 원망이 찾아옵니다.  시련이 찾아오면 사람이 미워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자 신앙을 떠나 보냅니다.

우리들이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에게 볼펜으로 써야 합니다.  쓰고나면 지워지지 않을 신앙과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환경과 사람을을 이겨낼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질병이 찾아오지만, 담대해집니다.  가난이 찾아오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시련이 찾아오지만, 끝까지 인내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지만, 천국 간것으로 믿습니다.  이제 부터 우리의 신앙이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볼펜으로 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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