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동안 서울 방문으로 글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어린 아이들을 가급적이면 다른 집에 데려가지 않습니다. 다른 집에 가면 아이들이 그 집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다른 영향은 아이들을 키우는데 해로울 수 있습니다. 어른들도 자신이 방문하는 집에 어린 아이들이 있다면 방문을 자제합니다.
유대인들은 가급적이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밤에 외출하지 않습니다. 밤은 잠을 자는 시간이지, 활동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낮 시간은 활동이고, 밤은 휴식이라는 것을 구분해서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배려하는 어른들의 행동이 나타납니다. 어른 중심이 아니라 아이들 중심입니다. 부모 행동의 목적이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 됩니다.
우리 신앙의 주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을 배려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그 종교의 주체, 신을 믿게 하는 기적의 사건들이 있습니다. 신의 기적적 행동은 신자들의 믿음과 종교적 행동을 유발시킵니다. 신의 행동이 우리와 같다면 우리는 신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신들에게는 신통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도 신통력이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홍해 바다를 반으로 가르게 하신 신통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적들을 괴멸시키는 신통력이 있습니다. 그럼으로 유대인들은 이러한 신통력을 나타내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엘리야, 엘리사와 같은 경우입니다. 예수님도 죽은 자가 살리시고, 물위를 걷는 신통력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선지자와 예언자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기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되심을 계시하는 방법으로 사용하지만 이러한 기적으로 예수님 자신을 이해하거나 믿게하는 방법으로는 절대적 거부를 하십니다.
신약성경의 공통점은 후반으로 갈 수록 기적이 사라집니다. 사도행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고, 나병을 고치신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되심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믿고 기대하는 세례 요한은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입니다. 이러한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아니하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기적은 초인적입니다. 비인격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십자가에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기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하늘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기적을 있지만 스스로 거부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십자가의 강도와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요구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기적을 거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기적을 요구하는 세례 요한과 기적을 요구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경고가 무섭게 나타납니다. 그 내용이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벳세다, 고라신 가버나움에 대한 예수님의 진노와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오늘도 기적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들이 기적이 없다고 하거나 기적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기적은 우리들의 요구에 의하여 발생하거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적으로 하나님을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를 보호하는 방법을 참고하신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하나님 예수님은 인격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의 인격은 기적을 능가하십니다. 인격은 깊은 교제를 갖게 합니다. 오늘도 나의 삶의 현장에서, 기적보다, 나의 언어와 행동으로 하나님과 교제하시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