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순교자을 죽이는 잘못된 강조

오늘 본문은 다니엘의 3 친구가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뜨거운 불속에서 들어갔다가 살아 나온 이야기입니다.  느브갓네살은 2장에서 다니엘의 예언대로 자신을 순금으로 표현한 신상의 머리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 꿈의 해몽대로 자신을 상징하는 황금신상을 만들게 됩니다.  자신을 신격화합니다.  우상화합니다.

북한에 가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정권의 동상이 수만개가 된다고 합니다.  자신들을 신격화 우상화합니다.  그 동상 앞에 경건하게 절하고 불경건한 행동을 하면 바로 처벌을 받습니다.  만수대 김일성, 김정일의 시신이 있는 곳에는 신발의 덧신을 신고 들어갑니다.  강력한 바람을 사용해서 몸의 먼지를 제거합니다.

느부갓네살과 김정은 정권이 동질성이 있습니다.  사람을 신격화해서 우상으로 섬기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들의 정권을 폭력으로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가장 허약한 정권이 이러한 우상화를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항상 자신들의 부화와 식민지의 반란을 걱정했습니다.  황금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뜨거운 풀무불에 집어 넣겠다고 합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이러한 우상 숭배를 거절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이들을 죽이기 직전에 협상을 합니다.  절하면 살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자신들을 건저 주실 것이며, 그렇게 하나님이 건져 주지 아니하실 지라도 신상에 절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다니엘의 3 친구들은 신상에 절하지 아니한 결과 그들은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제가 지금 부터 어려운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우리 머릿돌 교우들은 이 어려운 이야기를 이해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순교라고 합니다,  한국 교회는 일제의 우상 숭배를 거절하는 순교자의 피에 의하여 새워졌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도 로마의  황제 숭배를 거절하는 순교자의 신앙에서 교회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의 치욕의 역사가 있습니다.  일제의 우상 숭배를 참여한 자들이 있습니다.  로마의 우상 숭배에 참여한 자들이 있습니다.  로마의 우상 숭배 참여자는 유명한 도나투스의 논쟁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사용하시여 교회를 이끌어 왔을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다니엘의 3 친구가 풀무불에 던져 질 때에 다니엘은 어디에 있습니까?  (단 6장)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 질 때에 다니엘의 3 친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왜 다니엘은 자신의 3 친구가 불에 던져 질 때에 함께 있지 않습니까?  왜 다니엘이 3 친구는 다니엘과 함께 사자굴에 있지 않습니까?  왜 성경이 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까?

교회의 신앙을 누가 세워갑니까?  순교자의 신앙이라고 말하는 의미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을 강조하면 우상숭배입니다.  순교자의 신앙은 우리들이 본 받을 것이지만, 교회를 세워가시는 것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순교자의 신앙을 강조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순교자의 신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자격과 요건을 집어 넣으려는 것은 교만입니다.  저는 이러한 강조로 신자들과 교회가 이원론적 우상숭배에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교자의 신앙으로 교회의 모범을 세우고, 그들의 모습으로 우리를 교훈하십니다.  그들의 피를 절대로 헛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지나친 강조는 순교자들의 죽음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우리들이 이것을 이해해야합니다.  우리들이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본받으며 살아야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교회가 존재한다고 하면 그들은 우리의 우상숭배로 전락합니다.  양화진에 있는 순교자들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들을 또 한 번 죽이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에서 살아남은 신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신앙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을까요?  그들이 다네엘의 3 친구와 같은 태도로 살고 있을까요?  그들은 죽지 못해서 치욕과 부끄러움으로 신앙을 지킬 것입니다.  죽지 못해 사는 것입니다.  왜 이것을 순교보다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그들이 있기에 교회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시여, 교회를 유지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장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저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도식적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가장 무서운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순교자의 신앙을 본 받아야 하지만, 그들을 본받는 것으로 신앙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는 부끄러움, 치욕과 고난이 함께 나타납니다.

3 사람이 불속에 던져져지만 불속에는 4 사람이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느부갓네살은 그 한 사람을 신들의 아들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바로 그 고난에서 성령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저는 지금도 순교하지 못해서 사는 북한의 교인들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며, 성령이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우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상  가운데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좀더 깊고 넓은 생각을 해야합니다.  불속에 한 사람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사시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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